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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책읽기란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하는 행위라 생각하며 살아오다가,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. 눈 감기전과 눈 뜨고 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책 읽기였던 6개월 아기는 자라서 어느덧 60개월이 다 되어간다. 이제 글도 제법 읽고 쓸 줄 알지만, 혼자 읽는 책은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보는 재미랑 아직 비교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.      조선시대 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책 읽어 주는 아이 ‘책비’이야기는 배경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게 다가왔다. 누구나 손쉽게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고, 또 읽을 수 있는 요즘 시대와는 다르게, 특정 신분계층의 사람들만이 문자를 읽을 수 있고 또 책을 접할 수 있었던 시대였기에 책을 읽어주는 ‘책비’라는 직업 또한 존재했을 것이다.     주인공 이량은 양반집 규수였으나 역적으로 몰린 아버지는 귀양살이 가고, 어머니는 죽음을 맞이하며 삶의 위기를 맞는다. 아버지로부터 은혜를 입은 최 서쾌(서적중개상)의 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필사와 책비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.    “난초 짠보가 다 무엇이란 말이냐! 욕심의 또 다른 이름일 뿐. 무릇 이야기란 욕심을 내려놓고 그 흥으로 살려야 하느니라. 글을 살 수 있게 하는 것, 그것이면 되는 것이다. 욕심을 덧입히면 이야기가 무거워지는 법. 네게 되려는 것이 정녕 무엇이란 말이냐?” 133p   책비 최고의 경지인 난초 짠보가 되고 싶은 이량의 욕심을 수현 오라버니에게 들키며 듣게 된 소리다. 천한 직업이라 생각하며 거부했던 책비란 직업을 받아들이고,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죽어가는 거지의 자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난후 마음을 다 잡지만, 수현 오라버니에게 드러낸 속마음에서 욕심이 들어 있었던 듯 했다.    내 아이뿐 아니라 다양한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어주고자 하는 활동을 하고 싶어, 시도하고 있는 나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문구였다. 글을 살 수 있게 하는 것, 그것이면 되는 것이다. 욕심을 덧입히면 이야기가 무거워지는 법.     집안을 모함에 빠뜨리고 아버지마저 죽음에 이르게 만든 원수의 집에 머물며, 원수의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이량. 원수의 아들을 죽이려다 그곳을 떠나는 것을 택한다.    ‘악행을 악행으로 갚는다면 너와 내가 다를 바 무어란 말이냐.’   책 읽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던 양반집 딸은, 책을 읽어 돈을 벌고 책을 읽어 결국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. 할 수 없을 것 같던 스스로의 삶을 결국 스스로 살아낸다. 주체적인 삶이 불가능했던 시대적 배경이라 그런지 그녀의 그러한 삶의 행보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.     

책비 권이량을 만나다조선 시대 책비(冊婢)라는 직업여성이 있었다. 보자기에 세책 몇 권을 싸 들고 다니며, 양반집 안방마님의 치맛자락을 눈물로 적시게 했던 여성 이야기꾼. 책 읽어 주는 계집종이라 무시하는 이들에게 자신은 재능을 펼치는 직업여성이라 말하던 당찬 그녀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.

떨어진 꽃잎은 바람에 흩날리고 | 책 읽는 종년이라니 |
헛된 죽음을 부르지 마라 | 흙바닥을 기어가는 여인 |
무엇을 망설이느냐? | 살아있는 이야기 |
얼싸 좋네, 살판이로구나! | 저승 가는 길도 쉬어 가게 하는 것 |
난초 짠보가 될 테야 | 겨울이 지나야, 새봄 |
진정 무엇이 되려느냐? | 소귀에 책 읽기 |
불길한 예감은 틀리질 않고 | 상처 입은 꽃이 죽음을 부르네 |
닫힌 눈이 뜨이다 | 책비, 권이량